뉴스

발로 만든 음식, 누가 더럽다 모독하는가

본문

                    
IE002036222_PHT.jpg
산성마을 담벽에 그려진 누룩할매 그림과 사연.ⓒ 허시명

"오래 전부터 우리 마을 아낙들은 생계를 위해 누룩을 디뎠다. 농사 지을 땅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 집 건너 두 집이 누룩을 디뎠다. 누룩 디디는 집에 별을 붙여서 하늘에 올린다면 산성 하늘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다."

산성누룩 마을 벽에 새겨진 누룩 할매 이야기다.

이제는 누룩 할매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그래도 부산 금정구 금성동 산성마을 안에서는 누룩 디디는 아낙들이 있다. 밭일을 많이 해서, 아이를 많이 업어서 누룩 할매의 허리가 굽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누룩을 디딜 때 자꾸 발밑을 내려다보다가 허리가 굽었다고 한다.

산성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어려서부터 누룩을 디뎠고 그게 업이 됐다. 남자들은 누룩을 디디지 않았다. 마치 그 시절 남성들이 부엌일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자의 노동과 여자의 노동이 분리돼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대신 남자들은 산에 가서 나뭇단을 해다가 동래나 구포에 내다팔아 돈을 만들었다. 여자는 누룩 만들고, 남자는 나무하고 그렇게 보낸 산성의 시절, 바로 한 세대의 전 일이다. 이제 산성마을엔 염소불고기 집과 족구장으로 가득하지만, 이 마을을 키워온 것은 보름달 같은 누룩이었다.

소중하고 보배로운 존재, 누룩
IE002036223_PHT.jpg
산성누룩을 들고 누룩에 담긴 사연을 풀어내고 있는 유청길 명인.ⓒ 허시명

우리는 누룩을 디뎌보기 위해서, 산성막걸리 토산주 유청길 대표를 만났다. 그는 누룩을 들고, 신산했던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밀주 단속처럼 누룩 단속을 당했다. 도적처럼 쫓겨 살았던 시절이 그의 어린 시절이다. 이제 그는 노랗게 꽃이 핀 누룩으로 술 빚어 이름난 막걸리 장인이 됐고, 식품명인으로까지 지정됐다. 마을 벽화에는 누룩 디디는 집에 별을 붙여서 하늘에 올린다면 산성 하늘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라고 했는데, 아마도 누룩을 하늘에 올린다면 산성 하늘의 보름달이 됐을 게다. 그만큼 산성의 소중하고 보배로운 존재가 누룩이다.

유 대표의 집안에서 누룩 만드는 일은 그의 어머니와 누이들의 몫이었다. 여든 중반이 된 어머니는 이제 누룩 디디는 일을 그만두셨지만, 그의 누이들은 여전히 맹렬하게 누룩을 디디고 있다. 하루에 2시간 반씩 세 명이서 380장을 만들면 누룩방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다.

유 대표의 누이들의 가르침으로 누룩을 만들어봤다.
IE002036224_PHT.jpg
산성 아낙의 가르침을 받아 누룩을 만들어보다.ⓒ 허시명

재료는 통밀과 물이다. 우선 통밀을 잘 빻아야 한다. 너무 거칠지 않고 너무 가루지지 않게 빻는다. 예전에는 빻은 밀을 체로 쳐서 밀가루는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지만, 이제는 밀기울과 밀가루를 함께 써서 누룩을 만든다. 반죽을 잘 해야 한다. 두세 가마니씩 반죽할 때는 몸빼바지 입고 두 발로 두 시간 정도 지근지근 밟았다.

지금은 반죽기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빻은 밀을 치대 반죽하는 일은 힘들고도 종요로운 일이다. 특히 산성누룩은 다른 지방의 누룩보다 얇고 넓적하기 때문에, 잘 치대지 않으면 뭉쳐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밀은 오래 치대면 글루텐이 형성돼 끈적끈적 잘 뭉쳐진다. 반죽을 따라 해보는데 어른 남자들도 손목이 아플 지경이다. 반죽이 다 되면 한 양푼씩 개량하여 한 덩어리씩 나눈다. 한 덩어리의 무게는 대략 1200g쯤 되고, 마르면 900g쯤 된다. 

덩어리진 반죽 밀을 보자기에 싸서, 얇은 나무판 위에 올려놓는다. 누룩을 디디는데, 먼저 발뒤꿈치로 밀어 덩어리를 고르게 펼친다. 발바닥에 물기가 느껴지지만 물이 묻을 정도는 아니다. 적당히 펼쳐지면 섬세한 발가락 쪽으로 반죽 밀을 둥글게 모양 잡는다. 두 발을 얹을 수 있을 만큼 넓적해지면, 누룩 위에 두 발을 올리고 뱅뱅 맴돌면서 반죽 속에 들어있는 공기를 빼낸다. 폭신하고 찰진 기운이 때문에, 누룩을 밟는 질감이 참 좋다. 이때 누룩이 너무 얇아지지 않게 해야 하며, 테두리는 조금 두툼하게 가운데는 조금 얄팍하게 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누룩
IE002036225_PHT.jpg
누룩 디디는 시간은 발을 재발견하는 시간이다.ⓒ 허시명

발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공을 차거나, 땅을 딛기만 했을 뿐인 두 발로 상품을 만들다니, 발의 재능을 재발견하는 느낌이다. 디디다 보니 손가락도 절로 힘이 들어가고, 발가락으로는 풍금을 치는 듯하다. 물론 발은 깨끗하게 씻었다. 밝혀두건대, 발로 하는 것을 더럽다로 곧장 연결시키는 것은 발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보름달처럼 생긴 산성 누룩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산성에만 존재하는 누룩이다. 이 누룩이 산성막걸리 맛을 기막히게 낸다. 상큼하고 풍부한 과즙 맛이 돌고, 구수하고 묵직한 곡물 맛이 밀려오는 산성막걸리, 그 막걸리를 맛의 비밀은 노랗고 둥근 보름달 누룩에 있다.

보름달 누룩 한 장 들고 산성마을을 내려온다. 마치 보름달을 안고 내려오는 것처럼 마음 뿌듯하다.
IE002036226_PHT.jpg
산성 누룩방 앞에서 노랗게 꽃핀 누룩을 들고 부산 막걸리학교 학생들이 기념 사진을 찍다. ⓒ 허시명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계좌번호 안내 1712-09-000738-0 (유)금정산성토산주

금정산성막걸리 정보

회사명 _(유)금정산성토산주 | 대표이사 유청길 | 사업등록번호 621-81-06116 | 통신판매업번호 제2016-부산금정-0081호
주소 _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554번지 전화번호 제1공장 051)517-0202 제2공장 051)583.9227 관리자이메일 xhtkswn@nate.com
부가통신사업신고번호 12345호
Copyright© sanmak. 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