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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이어온 우리의 맛, 막걸리 한잔 하실래요?(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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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6일자 동아일보에 저희 산성막걸리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아래는 해당기사를 스크랩 해온 내용입니다.

원본기사는 링크를 걸어뒀습니다.



500년 이어온 우리의 맛, 막걸리 한잔 하실래요?


‘막걸리 명인’ 금정산성토산주 유청길 대표 

75929724.1.jpg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가 한창 건조 중인 누룩을 들어 보였다. 유 대표는 “깊은 맛을 내는 금정산성막걸리의 핵심 비결은 500년을 이어온 누룩 제조 방식에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첫 모금은 시큼하지만 입술에서 잔을 떼는 동시에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텁텁한 듯하다가도 이내 걸쭉한 요구르트마냥 부드럽게 혀를 감싼다. 처음부터 대놓고 ‘나는 이렇다’고 말하기보단 기다릴 줄 아는 이에게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술. 그렇게 전국 주당(酒黨)의 입맛을 사로잡은 술이 바로 ‘금정산성막걸리’다.

11일 금정산성막걸리를 만드는 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58)를 만나러 부산을 찾았다. 부산대 후문을 지나자 내비게이션이 3km가량 남았다고 알려줬다. 유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금방 도착한다”고 말하고 나니 눈앞에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돌고 또 돌고, 산을 타고 한참을 도는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였다. 비탈길이 버거운 듯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에 파묻혀 오르기를 10여 분, 성벽 사이로 난 문을 지나니 조그만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 금정구 금성동. 해발 400m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은 금정산성막걸리의 고향이다. 주당 사이엔 성지로 통하는 곳이다. 사무실에서 만난 유 대표에게 “막걸리 빚는 과정을 알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는 바로 누룩(술을 만들 때 쓰는 발효제)을 만드는 곳으로 이끌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흙벽으로 된 허름한 건물이었다. 건물 한쪽에서는 누룩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통밀을 거칠게 빻아 물과 섞은 뒤 반죽해 보자기에 넣고 발로 밟는 작업이다.

―누룩을 하루에 얼마나 만드는지…. 

“360장은 될 겁니다.”  


―언뜻 보기에도 손이 많이 갈 것 같습니다. 

“기계로 반죽하는 것을 빼곤 다 사람이 직접 하지요. 피자 도(dough)처럼 원형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잠깐 배워서는 하기 힘든 기술입니다. 일정한 압력으로 고루 밟아줘야 곰팡이가 잘 자랄 수 있어요. 여기 계신 분들 모두 40∼50년씩 이걸(누룩 만들기) 하신 분들입니다. 몸에 완전히 밴 거지요.”  

―지름이 30cm 정도 되나요? 크기가 일정해 보입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저번에 일본에서 누룩 연구하는 분들이 와서 보고는 매우 과학적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누룩은 테두리가 꽤 두꺼운데 이게 안에 습기를 오래 머무르게 해 좋은 효과를 낸답니다. 습기를 오래 머금을수록 누룩 안쪽까지 골고루 곰팡이가 필 수 있거든요. 저희는 예부터 전해 온 방식으로 이렇게 만들어 왔는데 알고 보면 조상의 지혜가 대단한 겁니다.” 

건물 안에는 10m²(약 3평)가량 되는 작은 방이 4개 있었다. 방마다 한창 건조 중인 누룩이 선반에 놓여 있었다.  

―방 안이 매우 덥습니다. 

“문을 꽉 닫아 놓은 채로 24시간 연속으로 연탄을 때니까요. 누룩을 제대로 말리려면 실내 온도를 48∼50도 정도로 맞춰야 합니다. 겨울에는 그럭저럭 견딜 만한데 여름에는 열기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연탄가스가 위험하지는 않은지요. 

“워낙 오래 하다 보니 몸이 적응이 됐는지 이 정도는 참을 만합니다. 그래도 오래 있을 수는 없어요. 필요한 일만 하고 바로 나와야 해요.” 

―누룩은 얼마나 건조시키는지…. 

“보름 정도. 1주일은 곰팡이를 발육시키고 1주일 정도 말립니다. 완전히 건조되면 공장으로 옮겨 잘게 부숩니다. 여기에 쌀로 만든 고두밥(지에밥)을 버무려 물과 섞어 여름엔 5일, 겨울엔 1주일 정도 탱크에 넣어두면 금정산성막걸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75929725.1.jpg누룩을 만드는 사람들. 거칠게 빻은 통밀에 물을 섞은 반죽을 보자기에 넣고 조심스럽게 계속 밟아줘야만 곰팡이가 골고루 피는 양질의 누룩을 만들 수 있다. 부산=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다른 막걸리와의 차별점이 바로 이 누룩에 있다고 보면 될까요.

“맞습니다. 우리처럼 직접 누룩을 만드는 곳은 아마 국내에 거의 없을 겁니다. 만드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다른 곳은 일본식입니다.” 

―일본식이라…. 막걸리는 대부분 전통주 아닌가요. 

“전통주라고들 하지만 제조 방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식 양조법을 입국(粒麴)이라고 합니다. 고두밥에 흰 누룩곰팡이 균을 뿌려서 섞은 다음에 독에 넣어 막걸리를 만드는 겁니다. 우리는 500년 된 전통 방식을 따라 직접 만든 누룩을 쓰는데 다른 곳은 누룩 균을 쓰는 거지요. 솔직히 막걸리를 빚기에는 입국 방식이 좀 더 쉬워요. 온도 맞추랴, 누룩 반죽 두께 유지하랴…. 적어도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니까요. 그런데 이게 과연 좋은 방식이냐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는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강조한다. 단맛을 부각시킨 막걸리도 있고 사이다처럼 톡 쏘는 맛이 포인트인 막걸리도 있다.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제품도 많다. 막걸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막걸리들은 대부분 숙성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향신료나 첨가물을 넣어 차별화했을 뿐 근본적인 제조 방식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면 무엇이 다릅니까.
 

“예전에 어머니들이 막걸리로 식초를 만들었다는 얘기 들어봤나요. 우리 술은 식초를 만들 수 있어요. 다른 막걸리는 아무리 오래 둬도 식초가 안 돼. 그 얘기는 우리 술에 유산균이 많이 들어있다는 증거예요. 유산균이 계속 활동하면서 발효를 시키니까 시간이 갈수록 부드러워지는 겁니다. 식초를 만들려고 우리 술을 사가는 분도 있어요. 이 식초가 진가를 발휘하는 곳이 횟집입니다. 회무침할 때 이 식초를 넣으면 그 맛이 죽여줍니다.”


―맛을 지키기 위해 누룩을 직접 만든다는 얘기인가요.


“네. 누룩만큼은 재래식을 고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누룩을 다른 방식으로 만든다면 금정산성막걸리 고유의 맛이나 특성이 확 사라져 버릴 겁니다. 학자들 얘기로는 누룩방 위치만 바뀌어도 미생물의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합니다. 최대한 그대로 두는 게 좋은 맛을 유지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마니아층을 제외하면 서울 ‘장수막걸리’나 부산 ‘생탁’이 대세인데….

“그들은 막걸리 업계에서는 거대 기업입니다. 우리 같은 곳은 아주 영세한 기업입니다. 마케팅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이 우리 술을 접할 수는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다릅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데에서 순식간에 퍼지니까 지금도 주문량을 다 대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화제를 돌려 유 대표가 금정산성막걸리와 함께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1998년 금정산성토산주 대표를 맡은 뒤 20년 가까이 막걸리 제조의 한길을 걷고 있다. 2014년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그를 식품명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막걸리 분야에서는 그가 전국 최초다.

―처음부터 막걸리를 빚어 오신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금정산성막걸리의 역사를 알아야 이해하기 쉬울 듯합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만든 게 500년 전인 16세기부터입니다. 올라오실 때 느꼈겠지만 이곳은 고도가 높고 산으로 둘러싸여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다. 먹을거리도 마땅치 않고요. 그러니 주민들은 누룩이나 막걸리를 동래나 구포 쪽으로 내려가 팔아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어요. 그런데 1960년대 들어 정부가 쌀 부족을 이유로 누룩 제조를 법으로 금지하면서 문제가 생겼지요.”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문화가 사라진 건 이때부터인가요.


“네. 대다수가 술 빚기를 포기했지요.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몰래 누룩을 만들었어요. 땅굴을 파서 그 안에다가 누룩을 만들기도 하고요. 어쩔 수 없었지요. 돈벌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범법자가 된 거지요. 하지만 자식까지 불법을 저지르라고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전 직장생활을 선택한 겁니다.” 

―돌아오신 계기는…. 

“1980년 전통주 제도가 생기면서 합법적으로 막걸리를 빚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전통주 1호입니다. 이후 1990년대에는 마을이 번성하게 됩니다. 야유회나 회식을 하러 직장인 단체 고객이 몰려들었어요. 주민들이 식당을 열어 염소불고기도 팔고 막걸리도 팔았습니다. 식당 하루 매출이 제 한 달 치 월급을 넘길 정도로 엄청나게 장사가 잘됐습니다. 그때 전 공무원도 하고 다른 일도 했었는데 친구들이 ‘계속 직장 다녀 무엇할래?’라며 장사를 하라고 권유하더라고요. 그래서 1997년 과감하게 사표를 냈습니다.”


―1997년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불어닥친 때인데, 시기가 좋지 않았네요.


“네(웃음). 외환위기 때문에 경기가 확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직장에서 막 잘리는데 한가하게 와서 야유회할 만한 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금정산성토산주 대표를 맡은 건 그때부터인가요. 

“네. 1998년 1월 2일자로 대표를 맡았습니다. 마을 청년회장을 맡으면서 대표직도 겸하게 된 것이지요. 한번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금정산성토산주는 유한회사로 마을 주민 89명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막걸리 생산과 판매를 위해 설립한 법인이다.  

―요즘 말로 귀농을 한 셈이네요. 마을 어른들의 기대가 컸을 것 같습니다.

“당시 막걸리 하루 생산량이 딱 60병이었습니다. 거의 안 팔렸다는 얘기지요. 어른들 기대에 부응하려고 별의별 일을 다 했지요. 막걸리를 들고 경북 포항이며 경남 진주, 마산까지 닥치는 대로 홍보하러 다녔습니다. 차비를 따져보면 막걸리 값보다 더 많이 나왔을 겁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까. 우리 술을 달라고 하는 식당들이 조금씩 생기더군요. 입소문도 조금씩 나고.” 

―서울에는 언제 진출하셨는지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께서 우리 술에 관심이 많으셨던 모양이에요. 2000년대 중반 어느 날 신세계백화점 직원이라며 전화가 한 통 왔어요. 백화점에 우리 술을 들여놓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오케이’라고 했지요. 얼마 안 지나 다른 백화점에서도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때 알았지요. 백화점에 입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줄. 특히 딜러를 끼지 않고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하루에 2, 3박스(20병들이)를 납품했는데 지금은 하루 100박스 정도를 서울에 올려 보내니 꽤 성장했지요.”


―요즘은 얼마나 생산합니까.
 

“하루에 1만 병 정도 만듭니다. 2014년 10월에 2공장을 열면서 생산량이 많이 늘었어요.”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2014년에 부산에서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가 열렸는데, 우리 술이 건배주로 채택됐어요. 그때 마셔본 사람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특히 일본인들이 엄청 좋아하더군요.” 

한때 붐이 일 정도로 인기를 얻었던 막걸리. 그러나 요즘은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에는 백화점에서 막걸리 매출액이 수입맥주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다시 뒤집혔다. 전국 각지의 전통 막걸리를 찾아 나섰던 유통업체 상품기획자(MD)들도 이제는 와인으로 눈을 돌렸다. 유 대표에게 막걸리의 인기가 주춤한 이유를 묻자 “경쟁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쟁이 막걸리 시장을 죽이고 있다는 말인데, 외려 경쟁이 없으면 도태되는 것 아닙니까. 

“경쟁이 막걸리의 질을 낮췄다는 얘기입니다. 이 경쟁은 가격 경쟁을 말하는 겁니다. 막걸리 붐이 일었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한 업자가 막걸리를 1000원에 내놨는데 누가 옆에서 900원에 팝니다. 그러면 다른 업자가 800원에 팔고…. 단가를 맞추려면 결국 ‘허짜배기(질 떨어지는)’ 재료를 써야 합니다. 단가가 높아지면 시장에서 밀려나니까요. 이런 경쟁은 결국 장인정신을 몰살시키고 맙니다.” 

―어디서나 경쟁은 필수가 됐는데, 전통주에만 너무 관대한 건 아닌지….

“여기서 경쟁은 연구개발 경쟁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전통음식은 ‘슬로 푸드’입니다. 장사치보다는 업(業)의 지속성을 생각하고 가업을 이어가려는 장인정신이 필요한 영역이에요. 이게 상업화에 물들어 버리면 결국 모두가 망해 버립니다. 아까 말했지만 대부분이 일본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어요. 돈도 적게 들고 편하니까. 근데 이게 막걸리의 질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지역별 특색을 살린 누룩으로 만든 술이 늘어나야 막걸리 시장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누룩방에서 보니 누룩 만드시는 분이 대부분 60, 70대던데 500년 전통을 잇기 위한 계획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아버지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웠어요. 저나 제 동생들 머릿속에 있는 제조법은 경험으로 체득한 거라 저희가 죽으면 그걸로 끝납니다. 다행히 아들이 지금 일본에서 발효공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으로 느낀 것을 데이터화할 수 있다면 500년, 1000년 가는 막걸리를 만들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부산=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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